meta name="naver-site-verification" content="907076764712300405968261e9533d11cad1f6a8" / 이유 없는 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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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플까

이유 없는 병은 없다

by belly fat 2024.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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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몸이 아픈 건 당신 탓이 아니야. 이렇게 말해 주는 시릴 타르키니오가 있어 코끝이 시립니다. 이유도 모른 채 오랜 고통을 겪어온 우리들은 상처의 근원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쨌든 태어났으니 살아야 합니다. 잘 살아야 합니다. 살아보니 잘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게 인생입니다.


고통 없는 삶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얼굴도 모르는 조상으로부터 고통도 슬픔도 물려받을 수 있다. 유아기와 청소년기 등 어린 시절(이르면 태아 적부터 18세까지)에 겪은 부정적인 사건들이 성인이 된 이후의 심리적, 신체적 건강 상태와 관련이 있다면 어떤가. 
성인이 되어 겪는 심혈관 질환이나 암, 만성통증, 당뇨병, 비만 같은 만성질환과 모든 종류의 중독이 과거의 경험과 인과성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학대와 무례함, 언어폭력과 성폭력,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 학교폭력, 부모의 질병과 사망 등 다양한 시련들은 대개 성인이 되어서 건강의 적신호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이중 처벌인 셈이다.

하지만 진료를 받으러 가면 의사들은 우리를 병원까지 오게 한 근본적인 문제가 우리 과거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 어떤 질병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신체적, 심리적 건강을 위해서 식탁을 약국으로 만드는 우리 외부가 아니라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과거의 기억이나 DNA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리가 살아오며 마주해야 했던 크고 작은 역경들은 우리가 건강한 상태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아니라 우리의 수명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또한 어른으로서 지금의 우리 행동은 미래 세대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제공할 교육과 미래 세대가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보낼 방법에 깊이 고민해야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트라우마성 신경증은 현재의 삶에서 과거의 사건이 다시 벌어지는 것처럼 과거에 있었던 부정적인 기억이 재연되는 침투적인 사고 때문에 피해자들은 트라우마를 처음 경험했을 때와 유사한 정신적 감정을 자신의 내면에서 발산한다. 그래서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수년이 지난 후에도 두려움과 공포, 무력감, 죽음이 눈앞에 있는 것 같은 감정을 동일한 강도로 다시 느낀다.

심적 트라우마는 대부분의 기억처럼 우리의 의지와 욕구에 따라 떠올릴 수 있는 과거에 자리 잡고 있는 특정 사건이 아니다. 사건이 일어나고 수 일, 수 주, 심하게는 수년이 지난 후에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들이닥쳐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쑥 떠오르곤 한다.
 


우리가 겪은 부정적인 사건이나 트라우마성 사건들은 뇌의 형성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준다. 뇌가 변형되면 피해자가 타인과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부모나 조부모가 알츠하이머에 걸리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인격이 달라지는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슬픈 경험을 하게 된다. 또한 질병을 일으키는 사건은 유전자의 기능도 변화시킬 수 있는데 이러한 유전자 기능 장애를 향후 우리 아이와 손자가 물려받을 수도 있다.

심적 트라우마나 부정적인 사건을 겪은 피해자들은 과도하게 활성화된 편도체로 인해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괴로움을 겪으며 산다. 또한 학자들은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해마 크기가 수축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상위 개념인 당질코르티코이드가 과다 분비되면 해마의 신경세포들이 점차 죽게 되는데 이를 세포 자살(apoptosis)이라 부른다. 해마는 성인기에도 새로운 신경세포를 생성할 수 있는 드문 기간 중 하나이다. 신경생성 (Neurogenesis)은 해마가 수축하거나 기능이 퇴화할 경우 재생 불가하다. 세포재생불가에다 세포의 조기 사망까지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스트레스의 만성화 과정을 후성 유전학적 변이로 설명하고 있다. 후성 유전이란 유전자 발현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유전자 발현 스위치가 어떤 환경에 반응해 다양한 특징이 발현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폭력과 학대, 부정적인 사건 같은 환경이 몇몇 유전자의 발현에 영향을 미친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당질코르티코이드의 호르몬 수용체를 생성하는 유전자(NR3C1)가 존재하는데 이 덕분에 당질코르티코이드를 억제하고 신진대사는 보통 수준으로 회복된다. 이런 과정이 있어 직장 동료와 말다툼을 한 후 또는 유난히 힘든 하루를 보낸 후에도 편히 잠들고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스트레스 상황은 이 유전자가 발현하는 걸 방해하고 결국 스트레스 호르몬 수용체는 점점 덜 생성된다. 그러면 방치된 스트레스에 인체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고 스트레스를 생화학적으로 조절할 수도 없어져서 결국 독성 높은 코르티코이드가 뇌에 계속 축적된다.
그렇게 되면 신체는 아주 작은 스트레스에도 과하게 반응한다. 교통체증이 심하거나 배우자나 아이들이 성가시게 굴면 당신은 이성을 잃고 신중하지 못하게 행동하거나 심하게는 폭력적으로 변한다. 이러한 행동은 일회성에 거치는, 후회를 낳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자주 반복되는 성격 요소로 굳어진다.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파괴하는 이런 행동을 멈추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왜 어떤 사람은 부정적인 사건을 끊임없이 겪어도 타격을 받지 않는지 반면 어떤 사람은 그 사건을 극복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지 우리는 정확히 모른다. 그래도 해답의 일부를 제시해 줄 수 있는 몇몇 메커니즘은 식별할 수 있을 것 같다.
 
건강 심리학에서 적응을 얘기할 때 대처(coping)라는 개념을 주로 언급한다. 스트레스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이 개념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완화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은 인생에서 어려운 사건들에 마주칠 때 수동적이지 않다. 인지 전략과 감정 전략의 도움으로 스트레스의 영향을 줄이거나 이를 조정하거나 상대할 수 있다. 이를 대처라고 부르며 여러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 번째 유형은 문제 중심 대처(Problem focused coping)다. 문제에 맞서 직접적으로 행동하기위한 개인의 모든 노력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상대에게 왜 자신을 괴롭히냐고 물을 수 있다. 또는 자신은 상대가 괴롭힘을 지속하도록 두지 않을 것이고 자신이 상대보다 신체적으로 약하지만 필요하다면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전력을 다해 자신을 방어할 것이니 결국 상대도 상처를 입을 것임을 확실히 전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학교장이나 교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피해 사실을 알릴 수도 있다.
이런 방식의 대처는 문제의 원인과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식별함으로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정서 중심 대처(emotion focused coping)다. 이는 부정적인 경험이나 트라우마성 사건을 겪은 개인이 어렵거나 불행한 트라우마적 상황들로 인한 감정적 부담을 덜기 위해 동원하는 일련의 노력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건을 과소평가하거나(별일 아니야. 다들 한 번은 겪는 일이야. 더 심한 경우도 있어),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는(아빠가 엄마한테 난폭하게 대하긴 해도 아직 부부로 살고 있어) 경향이 있다.

이 접근방법은 또한 자책(모두 내 탓이야)의 형태로 또는 친구에게 털어놓거나 주변의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함으로써 사회적, 경제적 지지를 모색하는 것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이런 방식의 대응은 우리를 두려움과 슬픔 속에 머무르게 하고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일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게 만들 수 있다.
 
현실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을 피하는 접근 방식인 회피적 대처(avoidance coping)도 있다. 부모가 알코올 의존증인 경우 부모와 마주치기 싫어서 집이 아닌 친구 집에 간다든지 등의 방법으로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거나 파괴할 수 있는 부분은 삶에서 떼어내고 나머지 현실에 열중하는 것이다. 회피적 대처는 언뜻 보기에 비이성적인 것 같지만 출구가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자신에게 상처를 주거나 자신을 아프게 하는 것에서 시선을 거두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나쁜 방법이 아닐 수 있다. 최악이 가려지고 지워지니 그나마 우리가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적응기법인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미 워너가 회복탄력성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그녀는 한 연구에서 출생 전후에 겪는 아이의 스트레스에 대해 무려 30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 바 있다.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된 아이들의 3분의 1은 어떤 특별한 문제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되어서도 행복하게 생활한 것으로 밝혀졌다. 부정적인 사건을 겪었다는 이유로 고위험군으로 간주될 뻔한 많은 아이가 청소년기와 성인기에 이를 극복하고 인생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취약한 상황에 놓였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런 아이들을 추적하면서 에미 워너가 사용한 용어가 바로 회복탄력성이다.
 
회복탄력성이란 부정적인 사건과 질병, 시련 속에서 우리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찾아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회복탄력성에는 중요한 과정들이 있는데 이 과정들은 회복탄력성을 삶을 지키는 힘으로 만드는데 기여한다. 먼저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의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부모의 이혼을 지켜보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해독할 수 있어야 한다. '왜 하필 나 일까?' '오늘 내가 혼자인 건 어렸을 때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이야' 이렇듯 피해자는 늘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에서 그리고 자신이 떨쳐내지 못한 것으로부터 자신을 정의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 일은 자신이 절대 극복할 수 없을 거라고 여긴다. 그래서 부정적인 사건은 평생 안고 갈 자신의 일부가 되어 짐으로 남겨진다.
반대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과 삶이 우리에게서 앗아가거나 우리가 갖도록 허락하지 않은 것들과 진심으로 작별을 구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회복탄력성을 갖는다는 것은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님을 의미한다.
 
회복탄력성을 갖는다는 것은 인생의 다른 면을 보는 것이다. 인생이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갈 때면 동시에 우리에게 다른 측면을 선사한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눈에 인생은 여러 고난과 역경들로 이루어진 길과 같지만, 그 고난과 역경에 맞서 우리가 충분히 싸울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회복탄력성을 갖는다는 것은 도움을 받고 외부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면에서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연구원들은 종종 진심과 공감능력이라는 강점을 지닌 회복탄력성 튜터를 언급한다. 회복탄력성은 우리가 어느 순간 트라우마 전과는 다른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의 변화 과정이다. 단 이건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을 찾아야만 가능하다. 주변에서 우리의 손을 잡아줄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 즉 직감이 필요하다.


모든 것에는 답이 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인 정의는 없다. 자신만의 고유한 인식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자기반성과 반추를 과도하게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삶의 긍정적 경험과 부정적 경험을 대조해 지금이 더 나은 상황임을 상기하며 인생의 긍정적인 면을 만끽한다.
 
여기 우리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강력한 도구들이 있다. 긍정적 감정과 신체 긍정적 마음과 스킨십은 코르티졸 분비와 혈압을 낮추고 세로토닌과 도파민을 유도한다. 위장과 감정 장과 뇌는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비만을 관리하기 위한 우리의 식생활 관리는 위 건강과 뇌의 건강까지 챙기는 것이다. 자기 연민 자신을 향한 연민은 부정적 경험의 영향을 완화하고 회복탄력성을 촉진한다. 유머 웃음은 엔드로핀을 유도해 우울감과 통증을 줄이고 면역체계를 강화한다. 사랑 회복의 효과를 발휘하는 가장 강력한 감정으로 옥시토신 분비에 필요한 단백질을 생성한다. 용서 소화장애부터 각종 심혈관 질환을 일으키는 분노를 잠재운다.


 
물론 기쁨과 웃음과 함께
삶은 계속되지만,
간혹 밤이 찾아오면
두려움이 또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를 다른 식으로 보는 건 너무 쉬워 보이지만
그 시절 아이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우리는 예쁜 베일과 완벽한 가짜의 모습을 하라고
자신에게 이성을 강요한다.  
심지어 우리는 결국 복종에 불과한 용서를 시도한다.
하루하루가, 세월이 흐른다· · ·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까
기대하고 여전히 싸운다.
빛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과거를 다른 식으로 보는 건
너무 쉬워 보이지만,
언젠가 아이의 눈으로 보는 것이
덜 어려워지는 날이 올 것이지만
일단 현재로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네게
고맙다고 말하기로 다짐한다.  
 
「무제, 델핀 트라귀스」
 

 
시릴 타르티니오의 《이유 없는 병은 없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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