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틴은 인체의 세포 표면이나 인체 내부의 당단백질에 결합하는 특별한 종류의 단백질이다. 모든 생명체 계열에서 발생하지만 식물의 뿌리와 씨앗에 가장 많은 경향이 있으며 주로 콩류, 곡물, 씨앗, 견과류, 뿌리 식물에 존재한다. 렉틴의 한 종류인 리신은 피마자 씨앗에서 추출한 독으로 렉틴 가운데 가장 치명적이다. 지난 70년 동안 비밀 암살에 많이 사용되었으며 소금 알크기 알갱이 몇 개면 성인을 죽일 수 있다. 다른 식물성 렉틴은 리신만큼 강력하진 않으나, 강낭콩에 함유된 피토헤마글루티닌 혹은 PHA라고도 하는 렉틴과 관련된 식중독 사건은 보고된 것만 수백 건에 이른다. PHA가 장내 미생물 균형에 영향을 미쳐 생기는 결과다. PHA를 비롯한 다른 여러 가지 식물성 렉틴은 장 상피세포와 부정적으로 상호작용하여 장에 사는 유기체의 다양성을 낮추고 장을 손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밀, 호밀, 보리에서 발견되는 글루텐도 큰 문제를 일으킨다. 셀리악병을 유발하며 글루텐 감수성 같은 비교적 덜 알려진 질병도 유발한다. 밀에는 렉틴이 가득하며 밀 배아 응집소(wheat germ eggulutinin, WGA)도 함유한다.
밀로 만든 식품을 섭취할 때 생체에서 발생하는 장 기능 장애 발병의 연구에서 WGA를 저농도로 투여했더니 염증과 장 누수 증후군이 유발되었다고 한다. 글루텐 분자의 파편인 글리아딘 역시 소장 상피세포배양 실험에서 조눌린이 분비되도록 자극했는데 DNA와 RNA 세포 구조를 손상하고 산화 스트레스를 높이며 세포 예정사를 초래했다. 즉 글리아딘은 조눌린의 방출을 유도하거나 세포를 구성하는 요소를 직접적으로 파괴하고 산화 스트레스를 유도함으로써 장세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옥살산염과 폴리페놀, 이소티오시안산염 역시 다양한 정도로 면역을 활성화해 장을 손상한다고 본다. 자가면역질환, 염증성 질환으로 몰아가는 또 다른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땅콩에서 발견되는 렉틴인 땅콩 아글루티닌(peanut agglutinin, PNA)은 직장 점막의 정상적인 성장을 방해해 전암 병변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토마토는 독소가 많은 가지과에 속한다. 흰 감자, 가지, 피망, 고추, 담배, 고지베리 등도 같은 계열이다. 가지과 식물의 잎과 뿌리에는 글리코알칼로이드 독인 솔라닌과 더불어 렉틴도 많이 함유되어 있다. 가지과 식물의 섭취를 제한하면 관절 통증, 관절염, 자가면역 증상이 크게 개선된다.
감자의 렉틴인 STA( solanum tuberosum)는 면역체계를 활성화해 히스타민을 방출시켜 부기, 가려움, 두드러기,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천식, 발진, 두드러기가 있는 사람은 감자를 먹으면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우리의 장과 면역계에 큰 혼란을 일으키는 콩과 밀, 호박, 땅콩 등에 함유된 식물 속 렉틴은 뇌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으며, 파킨슨병의 발병에 기여한다는 가설이 있다. 파킨슨병은 기저핵 영역에서 도파민을 생성하는 신경세포가 손상되며 동작, 언어, 인지 처리에 문제가 생기는 신경 퇴행성 질환으로, 많은 경우 병이 악화되면서 우울증을 겪고 치매로 진행되어 삶의 질이 저하된다. 중간뇌에서 신경세포가 파괴되고 도파민 신호가 사라지는 원인은 아직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알파 시누클레인으로 이루어진 루이소체라는 비정상적인 단백질 집합체가 생성된다.
2015년 덴마크에서 한 흥미로운 연구가 수행되었다. 지난 40년 동안 미주 신경을 외과적으로 절단한 사람들이 일반인보다 파킨슨병에 걸린 비율이 훨씬 낮았는데 이 연구를 좀 더 파고들며 렉틴과 파킨슨병의 연관성을 이해해 보자.
미주 신경은 뇌관에서 시작되어 장, 위, 간, 췌장 같은 여러 소화기관과 신체의 여러 부분에 신호를 보낸다. 미주 신경은 거대한 신경으로 위장 기관과 뇌 사이에서 쌍방향 초고속 정보 고속도로 역할을 하는데, 뇌에서 보낸 신호는 미주 신경을 통해 소화기관으로 전달되고 다시 돌아간다.
장과 뇌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한다는 '장뇌축'이라는 용어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사이토카인도 혈류를 통해 뇌로 전달되지만 미주 신경도 이 쌍방향 소통에서 큰 지분을 차지한다. 심각한 소화 궤양을 앓는 환자의 경우 치료를 위해 미주 신경을 외과적으로 절단하기도 하는데 위장과 연결된 미주 신경 때문에 소화 과정에서 때때로 산이 방출되기 때문이다.
덴마크 연구에서는 미주신경 줄기 전체를 잘라내는 줄기 미주신경절단술을 받은 사람들과 위장으로 들어가는 연결만 절단하는 초 선택적 미주신경 절단술을 받은 사람들을 비교했다. 파킨슨병 발병률 감소는 줄기 미주 신경 절단술을 받은 경우에만 관찰되었는데 장과 뇌 사이의 연결로 이해할 수 있다. 장과 뇌 사이의 신경 연결을 차단하면 파킨슨병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에 영향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장에서 나온 물질이 미주 신경을 타고 뇌로 이동하는 걸까?
파킨슨병을 연구한 몇몇 동물실험을 살펴보며 이 미스터리를 풀어보자.
지난 20년간 분자생물학 분야에서 일어난 멋진 혁신에는 해파리의 녹색 형광 단백질의 활용이 있다. 녹색 형광 단백질을 사용하면 살아 있는 유기체내에서 단백질의 움직임을 시각화할 수 있는데 한 연구에서 녹색 형광 단백질로 표시한 PHA와 다른 렉틴을 선형동물인 씨 엘리건 선충에게 먹였더니 렉틴이 이동하는 경로가 정확하게 그려졌다. 놀랍게도 여러 렉틴이 미주 신경을 타고 벌레의 장에서 뇌로 이동했을 뿐만 아니라 도파민 분비 신경세포에 무리 지어 모여 있었다. 식물성 렉틴은 씨 엘리건 선충의 도파민 신경세포로 운반되어 영향을 미쳤는데 PHA는 신경세포의 소화기능을 감소시키고 손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는 해당 연구와 덴마크 미주 신경 절단 동년배 집단 연구에서 발견한 내용에 근거해 우리가 섭취한 렉틴이 장을 손상하며 미주 신경을 타고 뇌로 이동해 도파민 신경세포를 손상할 수 있다고 제안하는데, 독일의 신경 해부학자인 헤이코브라크와 영국의 신경과학자 존 호크스가 제시한 파킨슨병의 잠재적인 식이 원인 한 가지를 시사하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결과라고 설명한다. 브라크와 호크스는 신경 퇴행성 질환의 이해를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한 학자로 섭취한 '알 수 없는 병원체'가 장으로 들어가 미주 신경을 거쳐 뇌간으로 이동해 신경 기능 장애의 확산을 유도한다는 가설을 제시한 바 있다. 줄기 미주 신경 절단술이 20년간 파킨슨병 발병률을 40% 떨어뜨렸다고 하는 덴마크 연구결과와 관련해 일부 개인은 병인학적으로 장과 신경세포 표면의 유전적인 당 구조차이 때문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견해도 제시한다.
더불어 식용 식물에서 추출한 렉틴은 쥐의 위장관에서 약물 흡수를 증가시키고, 뇌에서 축삭과 수상돌기 경로를 따라 시냅스를 건너 이동하며, 다른 탄수화물 결합 단백질 독소 역시 개의 장을 완전히 통과한다는 다른 흥미로운 사실도 발견했다고 서술한다. 렉틴이 장의 투과성을 높여서 그렇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는 약물 전달 향상은 좋은 얘기처럼 들린다. 렉틴은 개와 같은 동물의 장을 손상하고 소장 상피를 통과하는데 인간의 혈액 표본에서도 땅콩, 강낭콩, 토마토의 렉틴이 검출된다. 우리 몸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2018년 권위 있는 학술지 네이처에 쥐에게 완두콩에서 추출한 렉틴을 투여한 후 파킨슨병 관련 행동이나 위장의 운동성 변화를 알아본 놀라운 연구가 발표되었다. 맹독성 제초제와 렉틴을 최소 용량으로 동시에 투여했더니 위장에서 운동장애가 먼저 발생하고 점진적으로 L-도파 반응성 파킨슨병이 유발되었는데 파킨슨병을 일으키는 외부 요인을 밝히는 새로운 임상전 모델로 앞서 언급한 브라크 박사가 제시한 파킨슨병에 대한 단계적 가설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덴마크 연구처럼 이 연구에서도 완두콩 렙틴에 노출되기 전 미주 신경 절단술을 받은 쥐 그룹을 포함했는데 이 쥐들에게서는 다른 실험 그룹에서 관찰되는 신경 손상이나 위 운동장애가 나타나지 않았다. 식물성 렉틴이 파킨슨병의 발병에 기여할 가능성은 끔찍할 정도로 높으며, 신경 퇴행성 질환 세계의 잠재적인 패러다임 변화라 할 수 있다. 콩과 토마토, 땅콩을 먹는 모든 사람이 렉틴으로 피해를 보는 건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식물성 식품에서 비롯하는 신경 손상에 더 취약할 수 있다.
물론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위에서 논한 여러 연구를 토대로 장으로 흘러간 식물성 렉틴이 장을 손상해 미주 신경을 타고 뇌로 역행하며, 그래서 동작과 다른 요소를 통제하는 기저 신경의 영역에서 도파민 분비 신경세포를 손상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가설을 도출할 수 있다.
렉틴을 섭취한다 해서 모든 사람이 파킨슨병에 걸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럴 수 있다. 유전적 특성에 따라 취약한 질병이 상이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구멍 뚫린 갑옷을 입고 있다. 구멍의 위치가 다를 뿐이다. 대부분의 만성질환의 근원은 염증이지만 개인의 고유한 유전적 취약성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고 본다. 렉틴을 비롯한 여러 식물 독소가 어떤 사람에게는 파킨슨병을 또 어떤 사람에게는 피부 문제나 관절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모든 질병에 공통적이고 근본적으로 깔린 원인은 염증이다. 유전적 취약성이라는 고유한 모양에 따라 각자 다른 질병이 발현될 뿐이다.
우리는 생의 대부분 수 톤의 식물을 먹으며 식물 독소에 노출되며 살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염증 자극을 받는다. 하지만 결과는 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염증성 공격에 노출되면 하시모토 갑상생염 같은 자가면역성 갑상샘 질환이나 루푸스, 류머티즘성 관절염, 당뇨병으로 발전하는 사람도 있다. 식물의 내재된 독소가 생각지도 못한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폴 살라디노의 《최강의 다이어트 카니보어 코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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